또 학교 폭력이 어린 영혼들을 상처 입히고 죽음으로까지 내몬다. 내놓은 대책이란 게 또 어이없다. 폭력 피해 학교를 대상으로 조사를 강화하고 ‘스쿨 폴리스’니 뭐니 경찰이나 공익요원 배치만 늘린다고 한다. 전형적인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법 아닌가. 혹시 ‘예방’이란 단어는 알고 있는지….
4~5년 전 잡지사 시절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위한 학부모 단체인 ‘학교평화만들기’를 탐방한 적이 있다. 학교에 ‘평화의 꽃씨’를 뿌려 학교 폭력을 예방하겠다며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던 단체다. 폭력 예방 교육은 다양성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원이 거의 없어 운영에 어려움을 느꼈고, 게다가 반미 단체 이미지까지 덧씌워져 홀대 받았다. 참나 평화 얘기하믄 반미나 좌파인가.
최근 다시 반복되는 학교 폭력 문제를 보고 이들이 운영하던 카페가 떠올라 들어가 봤다. 거의 문 닫은 수준이다. 그때도 운영이 힘들었는데 요즘은 오죽했을까. 정부에서 못하는 ‘예방’, 학부모들이 나서겠다는데 이런 곳에 예산 지원해주는 건 이념이나 성향이 달라 도저히 안 되겠는가. 사회나 학교에서부터 편향적인 인권 폭력이 난무하는데 이런 현실에서 학교 폭력의 해결을 바랄 수 있을까. 몇 해 전 학교 평화를 외치던 학부모들의 얘기를 꺼내서 올린다.
‘Peace!'
과천시 ‘학교평화만들기’ 모임을 찾아
“학교 평화, 이젠 아줌마들이 나설 때”
학교 폭력이나 ‘왕따’에 대한 우려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학교에서 몇몇 아이들은 자살 충동까지 느낄 정도로 삶과 죽음의 길을 넘나들고 있다. 왕따라고 해서 죽음까지 말한다면 조금 비약이 심한가. 하지만 아이들 문제라고 그냥 무심코 지나치면 문제는 더 심각해 질 수 있다. 일찌감치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깨닫고 문제의 한복판에 나서는 아줌마 부대의 학교 평화 수호를 위한 결의 현장을 찾았다.
학교는 위험하다? 도대체 아이들만 모여 있는 학교에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절박함이라도 있을까? 학교평화만들기가 처음 만들어질 무렵, 학부모들의 절박함을 끌어내는 일대 사건이 있었다. 지난 2001년 과천시내 모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같은 학급 학생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유서를 남기고 자살까지 이른 것이다. 당시 지역 학부모들은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몸소 느끼게 됐다.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학교에서도, 경찰에서도, 정부에서도 누구 하나 학교 폭력 예방에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결국 아줌마들이 나섰다. ‘학교폭력근절을 위한 과천시민모임’을 만들고 학교 폭력을 막기 위해 활동을 시작했다. 평화와 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 사업의 방향도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지난해부터 ‘학교평화만들기’로 단체명을 바꾸고 꾸준히 활동 중이다.
“평화의 꽃씨를 뿌려요”
어느 늦은 가을날. 과천시 과천환경운동연합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사무실에는 예닐곱 명의 아줌마들이 학교 평화교육을 위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지난달에 있었던 초등학생 평화교육의 평가와 최근까지의 평화교육 자료를 모아 교육 매뉴얼을 짜기 위한 얘기들이 오갔다.
“교육 프로그램은 일단 평화교육의 큰 틀 안에서 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프로그램이 근본적으로 어떤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새겨봐야 하고요.”
“평화교육에 대해 좀 깊게 공부할 필요도 있어 보이네요.”
“평화교육 매뉴얼에는 각 프로그램의 의미나 목표에 대한 설명, 실제 교육 경험 사례, 주의점, 교육 결과물 등이 꼭 실렸으면 좋겠어요. 처음 평화교육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실제 도움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학교평화만들기 ‘평화의 꽃씨들’ 모임에 참여한 엄마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 오전부터 열띤 토론을 벌였다. 평화에 대한 근본적인 교육부터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는 교육, 의사소통, 민주적인 의사결정, 학교폭력 등의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다.
‘꽃씨’ 모임은 갈등해결 강사과정을 거친 지역 자원봉사자로 구성돼 있다. 평화교육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하면서 학부모 스스로 평화와 인권에 대한 인식 수준도 높여가고 있었다. “얘들아 모여라! 평화랑 놀자”라는 슬로건 아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평화감수성 향상 교육을 하고 있다. 과천 관내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보통 1년에 48시간 가량의 교육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올해는 교육이 거의 없었다. 참여하는 학교나 학생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이화영 학교평화만들기 모임 대표는 “초등학생의 경우는 방과 후에 따로 장소를 마련해 교육하고 중학교는 주로 쉬는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평화교육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교과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해 참여하는 학교가 몇 개 되지 않고 학생들도 학원에 가기 바빠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아이들만 평화교육이 필요한 건 아니다. 부모의 은연중 나오는 폭력성은 아이를 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로 만들 소지가 있다. 가정에서부터의 평화교육도 중요하다.
이에 학부모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4~10월 기간 동안 매주 수요일에 ‘평화교육 강사양성과정’ 교육을 하고 있다. 학부모들에게 평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과 가치, 태도 등을 교육하고 갈등해결과 중재 기술도 익히게 하고 있다. 강사 교육을 마치면 학교 현장에서 평화교육도 진행할 수 있다.
‘꽃씨’ 모임은 학교평화만들기 활동의 일부분이다. 이외에도 부모나 동아리, 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찾아가는 인권시민학교’와 ‘청소년인권지킴이’ 교육 등의 활동도 이뤄진다.
또 학교폭력 예방과 청소년 인권신장을 위해 ‘10월 21일 애플데이’란 타이틀로 거리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밖에 학교폭력 상담실, 세미나, 토론회 등도 한다.
얘들아 모여라! 평화랑 놀자
‘평화랑 놀자’ 교육은 보통 4가지 주제를 가지고 4~11월에 걸쳐 교육하게 된다. 먼저 ‘갈등과 평화’를 주제로 한 교육에서는 갈등이미지 그리기, 평화모자이크, 사다코의 종이학(일본 원폭 피해 상징물) 등 다양한 형태의 실습물이 활용된다.
‘차이와 차별’ 교육에서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을 하게 되며 나의 사과 찾기, 차이차별 사례 찾기, 차별하지 않는 법 등을 배운다. 그 다음은 ‘의사소통 및 민주적 의사결정’ 단계로 경청하기, 딴청하기, 말잇기 게임, 의견을 모으는 나무 등의 순서로 소통의 기술을 익힌다. 끝으로 ‘학교폭력’ 교육은 학교폭력역할극과 피해자의 마음, 예방나무 만들기 순으로 교육을 마친다.
평화교육에 대해 아이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교육에 잘 적응했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효과는 금새 떨어진다. 이 대표는 “먼저 학교나 가정에서부터 갈등에 대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평화교육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사회에서 가장 폭력적인 학교 현실에서 학교폭력의 해결을 바랄 순 없다’라는 말이 있다. 학교 폭력은 가해 학생만의 특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과 학교환경, 사회적 현실 등 복합적인 원인을 포함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폭력이 발생할 경우 가해 학생만 찾아내 징계하고 처벌의 강도를 높여 재발을 방지하려 한다. 하지만 처벌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이 대표는 “우선 학교에서부터 학생인권이 존중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학생들 간에도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며 “그간 학교 폭력에 대해 처벌 위주로 대책을 세웠지만 예방을 위한 교육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폭력 예방은 학생들끼리의 갈등해결 과정에서 출발한다. 갈등해결을 위한 평화적 대처 능력을 키워준다면 가시적인 폭력 상황도 줄일 수 있다. 차이와 차별을 일깨워줘 다양성 속에서 서로 간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차별하지 않는 교육이 필요하다.
“집이나 학교에서의 평화교육이 중요해요. 선생님이나 학부모 모두 아이들의 평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도우미가 돼야죠. 아이들 생각을 온전히 받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권과 평화교육은 단지 폭력예방 차원이 아닌 사회의 문화 의식까지 변화시키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죠. 이는 제도적인 변화까지 가져올 수 있어요. 아이들뿐 아니라 사회 각층에서 평화적인 문제해결 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학교 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가 될 겁니다.”
힘든 여건 이겨내는 ‘아줌마의 힘’
학교 안팎으로 갈등해결과 평화, 인권교육을 하기 위해 나서고 있지만 ‘맨땅’에서 모임을 꾸려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학부모들의 참여나 도움이 절실하지만 호응도 변변치 않다.
평화교육이란 말은 일반인들에게 아직 생소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 평화교육을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은 전국적으로 거의 전무한 상태다.
그나마 운영되는 평화교육 모임도 정부나 학교의 지원은커녕 냉대받기 일쑤고 상근근무자 한 명 없이 모두 자원봉사자들로만 꾸려지고 있다. 자원봉사센터 등에서 지원되는 후원금이 고작이고 자비로 충당할 때가 많다. 재정도 빈약하니 제대로 된 홍보나 교육 지역을 넓히는 일도 버겁기만 하다. 이화영 대표는 모임이 시작될 당시부터 마땅히 도움 받을 만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맨땅에 헤딩이었죠. 평화교육과 연관된 자료를 찾아가면서 아이들을 위한 교육 매뉴얼을 자체적으로 만들게 됐어요. 지난 2004년 학교폭력특별법이 공포되면서 학교마다 평화교육을 하도록 명시하고 있죠. 하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 전체 조회 때 교감 선생님의 훈화 말씀으로 대체하면 된다고 하면서 거부하더라고요. 거의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죠. 학교에서부터 평화교육에 대해 마음을 열고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 답답하기만 합니다. 일부에서는 반미 교육이라는 허울을 씌우기도 하더군요.”
이래저래 힘든 상황만 이어지고 있는 이 수다스러운 아줌마들의 평화 모임은 어떻게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할까?
이 대표는 “아줌마의 힘이 아니었다면 열악한 환경에서 이 정도까지 모임을 끌어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제 과천시내뿐 아니라 점차 범위를 넓혀 전국적인 시민사회단체 모델로 키우려고 하니 할 일이 점점 더 쌓여만 간다”며 웃었다.
아줌마들의 억척스런 활동으로 평화교육이 정착된다 해도 학교 폭력이 모두 사라진다고 장담할 순 없다. 그래도 여전히 아줌마들은 ‘평화’를 외친다. 아이들을 마음 놓고 학교에 보내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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