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찾았던 경기도 외곽 시골학교에서의 하루 탐방을 담은 내용입니다. 풀내음 나는 그들의 교육에서 행복을 먼저 가르치려는 노력이 보이더군요.
정말 농촌 학교의 위기일까요? 아이들 얼굴에서 위기감은 찾아 볼 수 없더군요. 성장하면서 치열한 현실을 겪다보면 적응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시골 아이들의 순박한 동심과 교사, 학부모들의 넉넉한 마음으로 일궈지는 농촌 지역 교육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이미 경제적 기반이 무너져 가고 있는 농촌 지역의 교육은 어떨까? 경기도 양동면 양동초등학교에 속한 고송, 단석 등 2개 분교를 찾았습니다. 거의 대부분 초등학생들은 이 지역의 양동중고등학교로 진학합니다. 그래서인지 학원을 찾아보기도 힘들고 과외를 받거나 학습지를 하는 학생도 찾기 어렵습니다. 주로 학교 수업에 만족하는 수준이죠. 그렇다고 아이들 교육이 뒤떨어지고 불행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흙냄새 맡으며 자란 아이들의 맑은 심성은 아무리 돈을 들여도 배우지 못하는 소중한 재산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순박한 아이들의 즐거운 학교
양동면은 경기도보다 강원도에 가까운 지역이다. 그만큼 굽이굽이 시골길을 한참 들어가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처음 도착한 곳은 양동초등학교의 분교인 ‘고송분교’.
학교로 들어서자 때마침 점심시간이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모두 반갑게 식사를 권한다. 그 자리에서 두 그릇을 비웠다. 애들 밥이나 축내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은 이 지역의 농산물로 차려진 급식을 매일 먹고 있었다.
“학교 다니는 게 즐거워요. 공부도 하지만 선생님과 등산도 하고, 개울에서 물장구도 치고요. 가끔 서울로 도시 체험도 나가요. 수업도 재밌고요.”
식사 후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즐거운 모습이다. 학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유일한 놀이터요, 배움터이고, 꿈을 키우는 곳이다. 이곳 아이들에게는 ‘왕따’라는 말이 없다. 누구나 서로 보듬어주고 함께 노는 친구일 뿐이다. 시골 학교는 지역 문화의 공간으로서 역할도 하고 있다.
올해 고송분교로 발령받은 박진석 교사는 “아이들이 모두 말도 잘 듣고 속썩이는 일 없이 선생님도 공경할 줄 안다”며 “가끔 함께 목욕탕도 가고, 집으로 초대도 하고 함께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고송분교는 학년별로는 1~2학년, 3~4학년, 5학년, 6학년 등 4학급 총 21명이다. 이중 3~4학년 아이들은 총 8명이 함께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2명만이 학습지를 할 뿐 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에 대해서 생소해 했다.
주로 방과후 수업을 통해 보충하는 정도다. 영어 수업은 외국인 강사가 본교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지원을 나온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로즐린’이라는 교사와 아이들의 주고받는 대화를 들어보니 영어 발음이 예상 외로 능숙했다.
박진석 교사는 “3년 전 경기도교육청에서 시행한 ‘돌아온 농촌학교’ 프로그램 중 원어민 강사 지원은 교사나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선진국의 백인들보다 제3세계 영어권 국가 강사들이 오히려 시골학교에 적응을 잘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수업이 끝났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에 남아 있었다. 학원 강사가 아닌 학교 선생님과 함께 부족한 공부를 시작했다.
신명나는 사물놀이 가락에 어우러져
고송분교에서 양동초등학교를 지나 좀 더 들어가자 건물 규모가 꽤 큰 ‘단석분교’가 보였다. 멀리서부터 북, 장구, 꽹과리, 징으로 어우러진 신명나는 사물놀이 소리에 어깨가 들썩인다. 다음날 양평군청이 주관하는 사물놀이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었다. 5, 6학년의 고학년을 중심으로 한 사물놀이패는 오랫동안 장단을 맞춰온 듯 능숙하게 연주했다.
특기 적성 수업 중 하나인 사물놀이는 이미 학교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2004년 창단해 두 팀으로 나눠 일년에 4~5번의 공연을 준비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아이들은 배우긴 힘들어도 우리 가락에 매료된 인상이다.
“힘들 때도 있지만 친구들과 함께 우리 가락을 배울 수 있어서 보람 있어요. 선생님이 엄하실 때도 있지만 많이 도와주셔서 즐겁게 배우고 있어요.”
특기 적성 수업은 사물놀이 외에도 한자 수업도 있다. 이곳에서 정년퇴직한 선생님이 매주 한자 수업을 봐주고 있었다.
단석분교의 김명렬 교사는 “전교생이 대부분 사물놀이를 배우고 있고 한자는 읽고 쓰는 것이 웬만한 어른보다 나은 수준”이라며 “한자자격증 4급까지 받은 학생이 있을 정도로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자부했다.
단석분교는 고송분교보다 건물 규모는 크지만 학생수가 더 적었다. 2학년은 없고 1, 3학년과 4~5학년, 6학년 등 3학급 16명이 다니고 있다. 학생수가 적어 아이들의 개인 사생활까지 교사가 일일이 꿰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점점 학생수가 줄어들고 있어 언제까지 아이들의 신명나는 사물놀이 가락을 듣게 될지 모르는 형편이었다.
사라지는 시골 아이들의 웃음소리
양동초등학교의 분교는 얼마 전까지도 6곳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매월과 계정 분교가 폐교되면서 2곳만 남았다. 이곳도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특히 단석분교는 지난해에도 폐교에 대한 주민 투표가 있었다고 한다. 도교육청은 학생수가 부족한 지역의 분교를 통폐합해 관리를 수월하게 하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분교 교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단석분교의 김명렬 교사는 “시골 지역의 학교는 단순히 아이들을 가르치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지역 문화까지 이끌어가는 곳”이라며 “관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무조건 기업의 구조조정처럼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농촌 학교에 대한 행․재정적 지원이 부족한 것도 불만이다. 시설면에서 아이들에게 좀 더 혜택이 돌아갔으면 하는 것이 교사들의 마음이다.
학생수가 적다보니 복식 수업을 하게 되는 것도 문제다. 두 학년의 학생들을 한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보면 40분 수업 중 20분씩 나눠서 수업을 하게 된다. 그만큼 아이들은 수업량에서도 손해를 보고 있다. 교사들도 복식 수업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한다.
“솔직히 아이들에게 미안한 면이 많아요. 수업이 진도 나가기에 바쁜 경우가 많으니까요. 두 학년을 한꺼번에 가르친다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인 것 같아요. 괜히 마음만 바빠지고 도움은 많이 못주고 있죠. 하지만 좀 적응하다보면 복식 수업도 운영의 묘를 찾게 되더군요. 학생수가 적으니까 남는 시간을 활용해 부족한 부분에 대해 개별적인 지도가 가능하니까요. 이가 아니면 잇몸으로라도 해야죠.”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에 대한 지원도 부족한 편이다. 첫 부임을 맞는 신참 교사가 분교로 발령을 받으면 울면서 올 정도라고 한다.
고송분교의 박진석 교사는 “젊은 교사들이 오면 문화적 혜택을 누리기도 힘들고 집도 구하기 어려워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며 “교사들이 농촌 학교에서 적응해 갈 수 있는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농촌 지역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도 아쉬워했다.
“아이들이 커갈 수 있는 환경으로 시골이 더 좋죠. 인성적인 부분에서도 도움이 많이 되고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결국 커갈수록 입시 경쟁에 들어서게 될 텐데 도시 지역 학생에 비해 뒤쳐지는 것은 당연하죠. 아이들이 좀 더 교육 혜택을 누렸으면 좋겠는데 기회가 적어 안타깝죠.”
농촌 학교가 사라지는 것은 농촌의 구조적인 문제와도 연관된다. 주거지역도 없고, 경제적 기반을 잡기도 어렵다보니 젊은층이 자꾸 빠져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해맑은 농촌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걸 보고 있자니 씁쓸하기만 하다.
“아이들에게 흙냄새를 맡게 해줘야죠”
단석분교를 나오면서 한 학부모도 만날 수 있었다. 3학년인 김다영 양(10)의 아빠 김한일 씨는 양조장과 함께 목공 공예방도 운영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시고 함께 산다.
그는 분교 교사들과도 친해 가끔 술자리라도 가지면 불만 사항을 얘기하곤 한다. 주로 학업보다 너무 사물놀이에 치중하는 것이 못마땅한 듯했다. 거기다 교사들이 아이들 교육에 신경 쓰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한다.
“가끔 보면 너무 사물놀이만 열심히 시키는 것 같아요. 어쩔 땐 하루종일 사물놀이 소리만 들릴 때도 있죠. 대회 위주로 애들을 너무 몰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또 불만이라면 교사도 적은데 너무 출장을 많이 나가죠. 교사가 한 명도 없을 때도 있더라고요. 업무에 치여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부족해 보이는 게 아쉽죠.”
지난해까지만 해도 분교 폐지에 반대 의견을 고수했지만 올해부터는 차라리 폐지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한다.
“도시가 아닌 본교 초등학교와 비교를 해도 교육 환경의 차이가 심하게 나죠. 한 예로 본교에는 인라인 스케이트장까지 만들어 놓고 이용하지만 분교 아이들이 이용하기는 좀 껄끄럽죠. 일반 학교와 비교해 시설이 너무 떨어지니까 부모 입장에선 좋아보이지 않네요.”
김 씨는 인천 지역에서 사업을 하다가 부모님이 계신 양동면으로 이사온 지 10년 정도 된다. 벌이가 도시 지역에 비해 훨씬 적고 아이들 교육 혜택도 적어 부인의 불만이 쌓여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이곳 생활이 행복하다고 한다.
“집사람이 시골에 있으면 애들 교육이 뒤쳐진다고 불만을 얘기하지만 어려서는 흙을 만지며 놀게 하는 것이 맞다고 봐요. 근처 개울가에서 가족과 함께 삼겹살이라도 구워먹고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게 행복이죠. 중학생인 큰 딸이 공부는 잘 하는데 하반신 장애로 학교 다니기가 불편해요. 이사를 오게 된 것도 큰애 영향이 컸죠. 여기 학교가 문을 닫고 아이들 교육이 어렵다면 다시 도시로 나갈지 모르죠. 하지만 아이들에게 흙냄새 맡던 소소한 행복의 기억을 남겨줬으면 해요.”
여름이다. 그의 말대로 개울가에서 가족과 동네 아이들이 함께 물장구치는 모습을 상상하니 괜한 웃음마저 나온다. 교육은 행복을 먼저 가르치는 게 순서가 아닐까?
글/ 구성은 前 월간 해오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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