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드라마 <선덕여왕>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신라시대의 역사 다시 보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역사 드라마가 나올 때마다 근거 없는 역사 재해석으로 인해 적지 않은 파장이 이어졌다. <선덕여왕>의 경우도 그 시대 유물과 역사 해석에 대한 논란이 점화됐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이라고 재미 위주로만 넘겨짚기 전에 폭넓은 역사의식까지 동원해 자녀와 함께 좀 더 적극적인 역사보기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역사 드라마는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교육적으로 역사 드라마 보기를 권장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한다. 물론 역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높일 수 있어서 권장한다지만 역사와 역사 드라마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를 정확히 짚어 교육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 시대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도 필요하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연출로 인해 역사적 사료와 다른 부분이 여기저기서 노출된다. <선덕여왕>의 인기로 인해 불거진 첨성대와 관련된 논쟁 부분부터 역사 드라마를 다시 써본다.
드라마 <선덕여왕> 속 첨성대 의미 다시쓰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덕만의 대립이 극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하는 부분이 첨성대 착공에서부터다. 미실의 천신황녀 권위를 무너뜨리고 비로써 공주 신분을 회복한 덕만공주가 ‘첨성대’ 건립을 첫 소임으로 정한다.
경주 첨성대
덕만공주는 “(미실이 권위를 누리던)상천관을 폐하고 천문기상에 관한 모든 것을 백성들에게 공개하겠다”며 “서라벌 땅에 천문관측의 기준점이자 모든 백성이 볼 수 있는 책력을 건축물로 지어 그 이름을 첨성대라 할 것이다”라고 만인에게 공표한다.
“하늘의 계시를 받는다하여 백성들의 눈과 귀를 미혹시키는 일이 더 이상 없도록 격물(과학)을 널리 알려 백성을 이롭게 하겠다”는 덕만의 굳은 의지가 돋보였다.
드라마에서처럼 국보 제 31호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세운 천문기상 관측대로 선덕여왕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익히 국사책에서 배운대로 첨성대가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천문대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드라마 인기가 높아진 탓인지 그간 큰 의문 없이 받아들였던 첨성대의 의미에 반발하는 역사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정연식 서울여대 교수는 ‘선덕여왕의 성조의 탄생, 첨성대’라는 논문에서 첨성대가 천문대나 규표, 제단이 아니라 선덕여왕의 즉위를 기념하고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상징물이라고 발표했다. 첨성대는 박혁거세가 태어난 우물 형상과 석가모니를 낳은 마야부인의 몸을 결합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 교수에 따르면 “신라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가 왕위에 오른 것에 대한 귀족세력과 민심의 반감을 막고 왕권 안정을 위해 왕을 종교적으로 신성화하는 작업을 한 것”이라고 한다.
정 교수의 첨성대 관련 논문이 나온 후 KAIST에서 주관하는 첨성대 관련 대토론회도 이어졌다. 토론회에서 제기된 내용을 종합하면 ‘첨성대가 과학적인 구조를 가진 천문학 활동을 한 장소라는 설’과 ‘종교적 활동을 위한 제단 또는 특별한 이념적 상징성을 가진 구조물이라는 설’로 압축된다.
이같은 논란은 1960년대 들어 첨성대의 공간이 너무 좁아 천문 관측을 하기에 불편하다는 반론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이어졌지만 최근 드라마 영향 탓인지 다시 주목 받게 됐다.
첨성대에 대한 뚜렷한 근거 자료가 없어 추측하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건축물에 함축된 천문학적 상징성(28개 석단=28절기, 361개의 쌓은 돌수=음력 1년 일수, 상단 4면이 동서남북과 일치)이 강해 천문대라는 것이 짐작될 뿐이었다.
하지만 여러 논란거리를 종합해보면 첨성대는 하늘을 알고자 했던 신라인의 지혜가 담긴 천문관측의 일환도 됐겠으나, 신라 최초 여왕의 권위를 백성에게 내세우는 상징이었을 수도 있다. 오늘날의 천문대처럼 천문 관측에만 특화된 역할의 건축물이 아닌 그 이상의 상징성도 내포됐을 가능성이 짙다.
그럼 위의 논란을 토대로 드라마 <선덕여왕> 극본을 다시 쓴다면 어떻게 될까?
덕만공주의 대사 중 “서라벌 땅에 천문관측의 기준점이자 모든 백성이 볼 수 있는 책력을 첨성대로 지을 것이다”에 덧붙여, 모두에게 드러내긴 곤란한 내용이니 선덕여왕의 독백으로 ‘신라 왕권의 권위와 불교적 신앙의 뿌리내림을 위해 모두 첨성대를 통해 경배하고 그 뜻을 기려야 할 것이다’ 정도가 추가되면 어떨까?
단순한 첨성대 탄생의 극적 요소에 덧붙여 역사적 논쟁과 학설에 대한 숨은 뜻도 찾아보는 나만의 대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드라마상의 짧은 역사도 좀 더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한 비판적 역사 드라마 보기가 되지 않을까.
진정한 역사 비판 교육이 필요해요!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 대해 아이들이 진실 여부를 물어온다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고 허구적인 요소도 짚어줘야 한다.
역사 드라마를 만들 때 작가는 역사서의 단 몇 줄의 내용으로 24부작, 50부작까지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 골격 위에 나머지의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이다.
문제는 지나친 시청률 의식 때문인지 역사 속의 사실까지도 바꿔가면서 상상한다는 것에 있다. 그런 경우 지나친 국가주의나 영웅주의로 빠져버리기 쉽다. 역사 드라마는 역사적 소재를 가지고 만든 드라마의 한 종류일 뿐임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역사 드라마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해 역사적 인물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사회현상의 한 부분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에게는 자연스런 역사적 자극이 될 수도 있다.
우선 역사 교육을 할 때 역사적 사실들을 ‘골든벨 퀴즈’에 나오는 문제를 모두 맞힐 정도로 공부시킨다고 해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시대 흐름만 알도록 하고 그 시대에 대해 역사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바라본 것인지, 비판적 역사읽기를 위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과거의 지식이 우리 사회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현재와 과거를 넘어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변화시켜야 할 것은 과거가 아니고 현실 세상’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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