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은 두 부류의 세계가 공존한다. 부동산업자들은 성북동을 우리나라 제1의 부촌으로 꼽는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나라 재벌 1세대의 기업 총수나 중견 기업인들이 20~30년씩 살아왔다.
7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생겨난 재벌들은 청와대 등 권력의 요충부와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성북동에 군락을 이루며 부촌을 형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에는 지방에서 올라와 갈 곳 없던 이들의 오랜 삶의 터전 역할도 했다. 서울 성곽의 비탈을 따라 지어진 허름한 옛 가옥들은 70년대 서민생활의 모습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 골목마다 도심에서 보기 힘든 오랜 향수가 느껴진다.
성북동에는 호화로운 고급주택과 서민주택이 공존하는 가운데 곳곳에 문화유산도 찾아 볼 수 있다. 성북구는 서울시내에서 종로구 다음으로 지정문화재가 많은 곳이다. 국보와 보물, 사적, 중요무형문화재, 시지정 문화재들을 합치면 모두 66점에 이른다.
유형문화재는 대부분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사적지는 3곳으로 서울 성곽(사적 제10호)과 선잠단지(사적 제83호), 성락원(사적 제378호) 등이 있다.
성북동 나들이는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을 나와 성북초등학교 방향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다. 선잠단지에서부터 간송미술관, 서울 성곽,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말년을 보냈던 ‘심우장’, 문학가 이태준의 생가로 현재 찻집으로 운영되는 ‘수연산방’까지 찾았다.
3시간 남짓 성북동 나들이를 하다보면 ‘성북동 비둘기’는 보기 힘들지만 풋풋한 정겨움과 옛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누에고치 농사 잘 되길 기리던 ‘선잠단지’
한성대입구역을 나와 10여 분 성북동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사적 제83호인 ‘선잠단지’가 큰 길 가에 자리한다. 선잠단은 국가에서 양잠을 위해 잠신으로 알려진 중국의 3황5제 중 한사람인 황제의 황후 서릉씨를 배향하는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현재 선잠단은 도로변에 작은 터만이 남았지만 조선시대에는 바로 길 건너 옆의 성북초등학교까지 포함하는 넓은 곳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서울내 사적지가 그렇듯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폐허화됐다.
양잠 사업을 권장하던 조선시대의 풍속을 떠올리게 하는 선잠제례는 1908년부터 중단됐다가 1993년 이후 매년 5월초에 선잠단에서 제를 올리는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간송미술관
훈민정음 원본 등 비장의 유물 지켜온 ‘간송미술관’
선잠단지를 끼고 조금 올라가다 보면 성북초등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이 있다. 일년에 두 번 정도의 전시회를 갖는 미술관으로 평소에는 개방을 하지 않는 곳으로 악명(?)이 높다.
일년 중 개방하는 시기는 5월 중순과 10월 중순 경에 2주 정도만 일반인에게 문을 열고 있다. 하지만 간송미술관의 문화유산을 일반 시민들이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돼 오고 있다.
얼마나 중요한 문화유산이 있기에 사학자나 일반인들의 개방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질까? 그간 책이나 TV에서만 보던 한국 미술사의 국보, 보물급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이나 겸재 정선, 혜원 신윤복, 추사 김정희, 단원 김홍도의 진품 서화를 소장하고 있다. 또 간송의 보물 중 보물로 여겨지는 당시 기와집 20채 가격으로 산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도 있다. 하지만 이들 유물들은 아쉽게도 일년에 두 번 밖에 전시를 하지 않아 자주 보긴 어렵다.
간송미술관은 1938년 서울에서도 첫 손에 꼽는 부자였던 간송 전형필 선생이 ‘보화각’이라는 박물관을 만들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 1965년 간송미술관으로 개칭됐다.
이곳의 유물들은 간송이 1962년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웃돈까지 얹어 주며 사서 모은 것이다. 그는 일본이 빼돌린 문화재를 다시 끌어모으는 데 평생 전재산을 털어 넣은 ‘문화독립운동가’로 칭송되고 있다.
5월 중순경에 간송미술관의 전시가 예정돼 있으니 한국 고미술의 절정을 맛보고 싶다면 기간에 맞춰 들러보길 권한다.
글/ 구성은 (前 월간 해오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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