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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뒷간

한강 따라 백제를 둘러보다

역사 관련 드라마를 보더라도 유독 백제 역사에 대한 관심은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몇몇 대중성있는 시대적 역사에만 관심을 두는 것도 ‘편식’이다. 백제시대 초기의 역사와 신석기 시대의 터전 등 한강변을 중심으로 한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잃어버린 한성백제 유적 따라


백제하면 생각나는 몇 가지를 떠올려 보자. 공주의 무령왕릉은 수많은 금제 장신구가 발굴된 고분으로 유명하다. 초기에는 일본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영화 ‘황산벌’에 나왔던 의자왕은 백제 마지막 왕으로 유명하다. 백제의 멸망과 함께 낙화암에서는 삼천궁녀가 꽃처럼 몸을 던졌다는 설이 전한다. 또 뭐 없을까….


얼핏 떠올리면 대부분 공주와 부여 등지의 유적과 역사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들 지역의 백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웅진시대(공주)와 사비시대(부여)를 합쳐 185년 정도다. 그보다 훨씬 오랜 기간인 BC 18~475년의 500년간을 이어온 초기 백제의 왕성은 서울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고구려 주몽의 아들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세웠다고 전한다. 한성백제시대의 시작이다. 


하지만 현재 한성백제는 거의 외면 받아 왔다. 남아있는 자료나 유물도 거의 없어 연구도 지지부진했다. 초기 백제의 도읍지였던 하남 위례성의 위치도 아직 불분명할 정도다. 얼마 전까지도 하남시 춘궁리 일대, 송파구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천안 직산 등이 한성백제 도읍지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일부 학자는 한성백제 왕들이 하북 위례성에 이어 풍납토성-몽촌토성-이성산성-춘궁동 등으로 왕성을 옮겨 다녔을 것이라는 학설도 제기했다. 최근 들어서는 송파구 풍납토성에서 초기 백제시대의 유물이 다량 출토되면서 한성백제 도읍지로 굳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이번 답사는 송파구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살펴보고, 하남시 ‘춘궁리 일대’와 ‘동사지’를 거쳐, 백제인보다 6000년 전에 한강에 터를 잡고 살았던 신석기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암사동 선사주거지’까지 돌아봤다. 한강변의 백제 유적을 찾아보기 전에 ‘잃어버린 한성백제’의 도읍은 과연 어디였을 지를 상상해보면 괜한 의욕마저 생길 것이다. 

  

광주 풍납리 토성, 가장 유력한 한성백제 왕성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판축토성인 ‘풍납토성’(사적 제11호)이 한성백제의 수도인 하남 위례성이라는 주장이 최근 발굴 성과에 따라 힘을 얻고 있다.  

풍납토성 일부(송파구 천호동 소재)



1997년 토성 내부에서 백제 주거지가 발굴되고 이후 ‘여’(呂)자형 건물터, ‘대부’(大夫)명 토기, 전돌․기와․말머리뼈 등이 잇따라 출토되면서 풍납토성은 한성백제의 가장 유력한 왕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벽 너비 43m에 달하는 거대한 토성도 왕성임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다. 인근에 석촌동․가락동․방이동 고분군 등 백제고분이 널려있는 점도 한성백제 최초 왕성설의 근거가 되고 있다.


또 서기 200년대 무렵에 조성된 도로 유적도 최초로 확인됐다. 도로 유적의 발굴은 풍납토성이 한성백제 왕성(王城)이나 왕경(王京)이라는 추정을 더욱 뒷받침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풍납1동 197번지 일대(옛 미래마을 부지)에서 발굴된 것으로 국내 최고(最古) 도로 유적을 비롯해 대형 폐기장, 석축수로, 주거지 등 80여기에 이르는 유구도 확인됐다. 


지난 97년 이후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토기류와 기와류 등은 현재 풍납동 영어체험 마을 내 ‘유물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간 언론에서 보도됐던 1600년 전 한성백제 시대의 유물을 만날 수 있다. 높이 1m는 됨직한 커다란 옹기, 초화문․수지문․원문 등 다양한 문양의 백제와당, 토관(土管), 건물 기둥을 받쳤던 토제초석(土製礎石), 부뚜막 장식 등 진귀한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몽촌토성, 한성백제박물관 건립 추진


풍납토성 왕성설이 확산되기 전에는 인근에 위치한 몽촌토성(사적 제297호)의 초기 왕성설이 학계의 대세였다. 특히 1980년대 서울대박물관이 몽촌토성을 발굴하면서 하남 위례성이라는 학설이 나오게 됐다.

몽촌토성 전체 윤곽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3세기 중․후반에 출현하는 토기류다. 백제가 3세기 이후에 국가형태를 갖췄다는 입장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였기 때문에 시기적으로도 몽촌토성이 백제 왕성이란 학설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풍납토성 축조연대가 3세기 전인 기원전 1세기~서기 1세기로 앞당겨지면서 면적이 훨씬 적은 몽촌토성이 하남위례성이라는 학설은 신뢰가 떨어졌다. 


80년대 몽촌토성 발굴과 90년대 후반 풍납토성 발굴 성과를 통해 초기 백제인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전시관이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위치한 ‘몽촌역사관’이다. 몽촌토성과 석촌동, 가락동 고분 등에서 발굴된 유물을 보존·전시하고 있다.


몽촌역사관은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초기 백제시대 생활상을 보여주기 위해 1992년 설립됐다. 암사동의 선사시대 주거지 모형과 석촌총 고분 모형 등 유물 230여점을 전시해 서울에서 백제 유물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리고 2011년에는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한성백제박물관’의 모습도 볼 수 있게 된다. 90년대 후반 이후 출토된 풍납토성 유물이 영어마을 내 전시실에 전시되면서 백제의 ‘반쪽 역사’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현재 공사를 마치고 풍납토성 유물들과 인근 지역인 아차산 보루․구의동 유적에서 발굴된 고구려 유물, 하남시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신라 유물 등을 함께 전시해 삼국시대의 유물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하남시, 선사부터 조선까지 담은 ‘역사의 보고’


하남시 춘궁동(고골일대)이 하남 위례성이라는 학설은 다산 정약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약용은 광주군(지금의 하남시) 춘궁리를 하남 위례성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이후 고고학계에서는 하남시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광주춘궁리석탑



최근 들어서 교산동 건물터, 천왕사지 등 유물, 유적이 집중 발굴되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고고학계나 발굴 전문가들은 하남시를 경주에 버금가는 고대 도시 유물의 전시장으로 평가한다. 2001년 천왕사지에서 백제시대 기와(수막새)가 발굴되기도 했다. 20년째 발굴이 진행 중인 이성산성(사적 133호)이 백제의 첫 석성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백제시대의 유물이 나오지 않아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춘궁동 일대에는 ‘동사지’와 ‘천왕사지’ 등 대규모 절터 유적도 발견되고 있다. 동사지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초기까지 이어져 온 절터로 확인됐으며 신라 양식을 계승한 3층 석탑(보물 11호)과 5층 석탑(보물 12호)이 작은 산사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천왕사지 터는 아직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지지 않았으나 거대한 목탑지 등이 확인됐다. 


하남시 인근의 미사리도 백제 시대와 연관이 깊다. 하남시 미사리 선사유적지(사적 제269호)는 90년대 초 이뤄진 대규모 발굴에서 선사시대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문화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중요한 유적지임이 밝혀졌다. 4~6 세기 한성 백제 시대의 농경지를 보여주는 밭이랑과 철제 경작도구도 발굴돼 한성백제의 역사도 담고 있다. 유적지 조성이 되지 않아 현재는 밭작물 경작지로 남아 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 한강 유역의 대표적 유적지 조성


미사리에서 8km 가량 떨어진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사적 제267호). 서울시와 하남시 경계를 두고 불과 몇 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한강 유역의 대표적인 선사유적지로 조성돼 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 움집 모형 복원


 
기원전 3000~4000년 전의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던 움집을 복원해 놨다. 움집생활체험도 할 수 있다. 유물관 안에는 발굴 당시 현장을 그대로 복원해 놓고 영상물 상영과 함께 빗살무늬토기 등 발굴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한해 20여만 명이 찾는 암사동 유적지는 서울시뿐 아니라 다른 선사주거지역에도 모델로 삼을 만큼 대표적인 선사유적지로 꼽힌다. 선사시대 유적과 함께 한성백제시대 유적도 발견됐으나 따로 전시하고 있지는 않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일이고 하절기(3~10월)에는 9:30~ 18시까지, 동절기(11월~2월)에는 9:30~17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일부 학계에서는 서울시 송파구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석촌동․방이동 백제 고분군, 암사동 선사유적지와 함께 하남시 유적지 등을 묶어 한성백제와 선사시대 답사 코스로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와 하남시가 연계된 답사 코스를 만들어 관광벨트를 조성하면 유적 보존과 주변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답사 코스 조성은 토지매입 등 예산 문제가 만만치 않아 성사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