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맞다. 내 나이 열여덟이었다. 뭔가 삶에 대한 반항심이 커져가던 그때였다. 사춘기라고 봐야 하나...너무 나이 먹어서 사춘기라고 하기엔 왠지 좀 계면쩍다. 그냥 뭔가에 눈을 떴다고 해두자.
아직까지 방황하는 내 인생의 알 수 없는 나침반, 혹은 유적이 됐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문열을 많이 읽었고 락음악이라면 사족을 못쓰던 때다.
너바나를 따라 시애틀의 어느 차고로 날아가 버릴까도 생각했다. 정말 그랬으면 어땠을까. 밴드라도 하나 만들어서 여지껏 들이대고 있을까.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을 보고 어디 바다라도 훌쩍 떠나려고 했다. 그랬으면 어땠을까. 고등학교는 졸업이나 할 수 있었을까. 대학도 포기하고 그냥 방랑자로 살았다면..지금쯤 어디에서 서성대고 있을까.
이도저도 아니고 그렇게 자신있어하던 공부를 무지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정말 서울대나 연고대를 갈 수 있었을까. 만약 스카이대라도 들어갔다면 지금쯤 남들 보기에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뭔가 놓치며 살고 있진 않을까.
외로움에 치를 떨었던 그때, 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담배도 한두대 피웠다. 그냥 말도 안되는 무력감과 여기저기 눈치보는 고뇌에 빠져 있었다. 선발 고등학교에서 느끼는 알 수 없는 압박감과 교육이 이래서는 안된다는 마음의 동요도 날 가만두지 않았다.
질풍노도의 시기. 그렇게 여러 인생의 길을 두고 비껴나가 결국 여기까지 왔다.
놀라운 건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18살의 유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난 나에게 어떤 존재감을 주며 살아왔을까. 기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 교육을 바꿔야겠다는 막연한 목표, 뭔가 이런 쳇바퀴 삶은 안되겠다는 막연한 답답함, 이런 것쯤 내가 바꿔보겠다는 막연한 기대,
그런 막연함이 아직도 서성이게 만든다. 눈치보게 만든다. 내 자리에 있지 못하게 한다.
난 무엇을 했을까. 그대들은 나와 어디까지 와 있을까. 괜히 기분이 짠해지는 오후다. 밤도 아니고,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더워 죽겠는데 이러고 질질거리고 있다.
20년을 비껴와서 결국 국회도서관 창가에서 비비적댄다. 아마 18살의 막연함에서 벗어나긴 어려운가보다. 벗어났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을 두려워해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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