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제일검이라는 무사 한 명을 가운데 두고 100여명의 무사들이 삼삼오오 몰려든다. 어찌된 일인지 한꺼번에 다 덤비는 것이 아니라 칼 휘둘러서 쓰러지기 좋게 7~8명씩 조를 짜서 덤빈다. 나머지 무인들은 동료가 죽건 말건 그 중심으로 빙빙 돌며 흡사 강강수월래를 연상시키는 전법을 구사한다. 혹시 당시에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강강수월래 전법이라도 있었던 걸까라는 의문까지 든다. 싸우는 건지, 연극하는 건지, 주인공 개인기 보여주는 예능인지.
다음 장면. 조선제일검의 친구가 쪽지 하나에 속아서 오랜 지기의 부하들에게 당한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왜소한 친구 무사는 그를 살리려 한다. 그런데 살려주니 “니가 살아 있어서 모두가 죽었다”고 하소연한다. 하소연을 들은 그 왜소한 무사 친구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더니 다시 그 친구를 살리려 온 조선제일검과 같잖은 칼싸움 끝에 스스로 칼에 찔려 숨을 거둔다. 다른 사람이 아닌 니 손에 죽고 싶었단다.
이후에는 숨가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러브라인이 급속도로 만들어지면서 누군가는 뽀뽀하고, 누군가는 서로 안아주고, 조선제일검이라는 무사는 좋아하는 여인과 석양을 향해 말을 달린다. 그리고 끝이다.
월화극 중 시청률 1위라는 무사 백동수의 마지막 스토리다. 어느 정도 인기있는 드라마인지 잘 모르겠으나 조금 암담했다. 이 드라마를 제대로 본 적은 없다. 첫 회에 최민수, 전광렬 나오는 것만 보고, 마지막회라고 해서 잠깐 들여다본 것이 전부다. 이야기 전개는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마지막만 봐도 대충 어떻게 흘러왔는지 알 수 있겠다. 잘 모르니 전체 내용을 싸잡아서 비판하긴 뭐하지만 결말만 놓고 보면 작가나 PD가 피곤에 치쳐 대충 때웠다는 느낌이 강하다. 혹여 심혈을 기울인 스토리라면 자질까지 의심스럽다.
연기력은 둘째치고 스토리만 보면 그냥 명랑무협만화다. 아무리 만화스러운 드라마라도 이런 스토리 전개는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역사적인 부분은 백동수가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었다는 것 하나다. 그리고 악의 무리를 무찌르고 각자 좋아하는 이성과 서로 눈이 맞아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것이 전부다. 초등학교 때 보던 로봇 만화 주인공들이다. 이런 스토리를 심야시간대 어른들에게 보여주는 건 어린 시절 권선징악의 향수라도 느끼게 해주겠다는 심산인가. 이제 나이도 꽤 먹었는데 너무 애 취급하는 건 아닌가.
물론 해피엔딩이 나쁜 결말은 아니다. 문제는 억지스럽고 갑작스런 해피엔딩이라는 데 있다. 남녀 주인공이 석양을 향해 말 타고 달려가는 장면은 정말 눈뜨고 보기 힘들었다. 실소만 나왔다. 우리나라 드라마의 스토리가 점점 석양과 함께 지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줬다. 시청률까지 높다는 건 시청자들의 안목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어린 연기자들 데리고 드라마 만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으나 보는 사람이 최소한 이해할 수 있고 낯뜨겁지 않을 정도로는 만들어야 되지 않나 싶다. 가뜩이나 한류 거품 얘기도 많은데 스토리마저 거품이 되지 않길 바란다. 스토리에 대한 문화적 고찰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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