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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뒷간/치유를 위한 자전쓰기

나와 나 사이의 경계속으로 - 왼손잡이의 주문

평생 자신을 알아가는 것만큼 골치 아픈 일이 또 있을까..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가장 나다운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모든 나에게 둘러쌓인 장벽을 걷어내고 제거한 후 남은 ‘나다움’의 마지막 실체는 무엇일까.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 물음부터 철학의 역사도 괘를 같이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너무도 오래된 질문이고 명확한 답변도 내리기 힘들다. 

누군가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과 해답을 찾는 과정이야 말로 인류가 발견한 가장 최초의 정신병 일종”이라는 얘기도 한다.
공감한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처절한 바닥을 겪고 쓰러져간 이들이 너무도 많기에. 어쩌면 태초부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아예 존재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신이 생겼는지도 모르지만...)  

또 누군가는 “자신의 존재 방어막이 갈가리 찢겨 한계에 부딪힌 나만이 진정한 주체가 될 수 있다”고도 한다. 이 역시 귀에 박히는 말이다. 방어막을 벗어던지는 것만큼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도 없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 벗어던지는지 정해 놓은 것은 없다. 타인이 아닌 오직 자신만이 방어막의 한계를 어렴풋이 가늠할 뿐이다.

그간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알지 못하는 억눌림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기자로 살아왔다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기 위해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타협식의 자위와 자해에 매달려 온 것도 사실이다.

매번 똑같은 일상에서 장소만 바뀔 뿐, 누군가와의 소통도 대상이 바뀔 뿐 자신을 찾으려는 시간보다 그저 남이 나를 못 알아채도록 자연스런 보여주기 연기에만 몰입했던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 속의 ‘연기’는 근대문화라는 것이 받아들여진 시기부터 갈고 닦여져 사회생활의 주요 처세 철학으로 커다랗게 자리한다. 연기력이 조금만 허술해도 금새 자신보다 하위의 ‘낮은 사람’으로 낙인찍는다. ‘순진하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아직 연기에 능숙하지 못한 설익은 인간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요즘 ‘노는 인간’이 되니 조금이나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긴 것 같다. 노는 인간만이 볼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이나 주위의 메마름도 한없는 한계 속에 허우적대는 것만 같다.

이제야 말한다. 과거 나에 대한 온갖 치부와 바닥의 모습을 온전히 까발려 놓고 까발린 껍질을 불쏘시개 삼아 온전히 태우고 난 잔해 속에서 새로운 새 한 마리로 날아가는 처절한 탈아 과정을 밟아가려 한다.

물론 처절한 나 찾기 과정에서 낙오될 수도 있고, 점점 처연히 드러내는 실체에 누군가처럼 갈갈이 찢길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과의 적절한 타협은 없다.

내가 바라는 핵심은 무엇인지, 바로 그 핵심은 어떤 것을 의미할 지 늦게나마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친구 얘기로는 ‘관’을 통해 핵심을 보라는데 내면을 보는 것만큼 힘겹고 고독한 게 또 있을까)

비장하게 말해 출사표라면 출사표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뻘 짓이 될 수도 있는 괜한 짓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뻘 짓이 나에겐 무엇보다 절실한 문제다.

우선 작은 습관, 사소한 몸짓도 고쳐가며, 주변의 장막부터 걷어내는 것이 우선이겠다. 아주 작고 사소한 곳에서부터 자신을 짓누르는 실체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으므로...

지난 일상 속의 겪은 경험과 추억에서부터 나찾기의 글쓰기를 시작할 작정이다. 지금의 여정이 나와 누군가에게도 보다 근원적인 자신의 치유를 위한 고통이 됐으면 한다.

누구나 어려서 외워왔던 ‘국기에 대한 맹세’.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조국과 민족의 이름으로 몸과 마음까지 바치는 국가주의의 강요가 뼈 속 깊이 박힌 말뚝부터 우선 뽑아내서 다듬고 다시 심을 생각이다.
아직까지도 개인의 다원적인 생각과 새로운 공동체의 바람이 ‘반동’으로 몰리는 21세기의 강력한 정신 통제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봐야겠다.

이는 국가라는 거창한 이미지만이 아닌 매일 접하는 인터넷에서도 문화 ‘반동’의 설자리를 스스로 통제하며 갇히는 갑갑함이 서려있다.  

‘왼손잡이’라는 노래에서 가수 이적은 말한다.

>> 나를 봐 내 작은 모습을, 너는 언제든지 웃을 수 있니~
너라도 날 보고 한번쯤, 그냥 모른척해 줄 수 없겠니~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나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나는 왼손잡이야~ 나나나나나 난나나나나~~